카테고리 없음 2009. 8. 28. 17:22
K리그 5위팀이 이긴다고 생각하시면 공감을


스코틀랜드 3위팀이 이긴다고 생각하시면 비공감을 눌러주세요....


난 K리그 5위가 이긴다고 생각하기에 K리그가 이긴다를 공감에 스코틀랜드가 진다를 비공감에 넣었음








스코틀랜드랑 K리그는 급이다름.


적어도 유럽의 리그들에서 순위권에 잇는 애들은 뭔컵이다 뭐다 해서


수준높은 경기에 조별예선으로라도 나가기 때문에


허접한 K리그랑은 비교할 수가 없음. 고로 비공감.








굳이 셀틱을 선택해야했어나 아쉽긴 하지만 이미 결정이 난 것이니... 어쩔수 없겠네요.

여하간, 셀틱이 엄청강하다 리그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라고들 하시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리고, SPL리그가 워낙 떨어집니다. 잉글랜드 챔피언쉽 선수들이 가서 MVP먹고 Full time 주전하는 곳입니다.


최근에 맨유와 대등하게 경기한 것...

그리고 챔스 단골이라는게 좀 먹히나본데... 솔직히 좀 우습네요.

그렇게 따지면, PSV도 세계적인 강팀이겠지요.


한때, PSV가 EPL에서 리그를 하면 몇위 할까 풋볼매거진에 전문가들 콤멘트 싫어 나온 거 봤는데,

대다수가 중위권도 어렵다였습니다.



셀틱은 EPL이 아니라, 챔피언쉽 수준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 SPL 대다수 팀들이 챔피언쉽 만도 못합니다. 정말 가서 배울게 없는 곳입니다.


박주영이 뛰는 르샹피오나의 경우는 좀 다르죠. 챔피언쉽 수준에 EPL급 팀들이 군데군데 좀 있습니다.

그래서 리그 경쟁력이 6위정도 되는 것입니다.



박주영 보십시오.

K리그에서 동기부여 안되다가, 이제 배워가는게 생기니까, 국대에도 큰 도움되고, 더 발전한게 보입니다.



순스케 보십시오.

몇 년전이나, 최근이나 달라진게 없습니다. 유아적인 패싱놀음에 노련미가 좀 생긴거 밖에 없더군요.

여하간 좀 안타깝긴 합니다.

2년 정도 있다가, 빨리 옮기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쵸









빅리그에서 spl쳐다도 안본다 ㅡㅡ


ㅄ들아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나카무라가

거기서 올해의선수상먹고 활약하고도 빅리그 못갔것냐

챔스리그 많이나온다고?

나가면 뭐해 승점만내주는 그런 허접한팀인데

셀틱은 발판으로 삼기엔 절대 비추인팀이다

셀틱으로 간이상 빅리그 진출은 힘들어보인다








한국인들의 착각...


기성용이 셀틱을 발판삼아 빅팀 진출은 당연하다고 여기는거 같음

마치 시간문제 라는양...

마치 챔스뛰면 당장이라도 맨유행 잡을줄 아는거같음

박지성 맨유가고 퍼거슨 코리안 영보이 발언때문에 맨유쯤은 가겟지 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카무라처럼 셀틱에서 썩을수도 있고

셀틱을 평생 직장으로 삼을수도 있네여








 [영상] 셀틱서 45분만에방출 아시아인

http://cafe.naver.com/baseballmaniabest/1782






그래도 관중없는 k리그 보다는 좋을 듯




출처
네이버뉴스




위키백과에서 기성용



기성용(奇誠庸[1], 1989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현재 FC 서울 소속으로 뛰고 있다.

 

개요 [편집]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순천중앙초등학교, 광양제철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탄탄한 체구와 폭넓은 시야를 활용한 강력하고 정확한 롱킥이 스티븐 제라드와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기라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억을 잘 잊어버린다고 하여 '깜빡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축구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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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경력 [편집]

고등학교 졸업 후 2006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그 해 단 한차례의 리그 경기에도 뛰지 못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FC 서울세뇰 귀네슈 감독이 부임한 이후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2007 K-리그에서 16경기에 출장했고 공격 포인트를 쌓진 못했으나 팀에서 중요한 선수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7월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방한한 이후, KBS에서 기성용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에서 입단테스트 제의를 받았다고 보도하였지만, FC 서울 측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는 해프닝이 일어났고, 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건에 큰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였다.[2][3]

2008년에선 본격적으로 팀의 핵심 선수로 중용되기 시작했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서울의 상승세를 이끌며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쳐 팀의 준우승을 도왔다.

2009년, 전남 드래곤즈와의 개막전에서부터 골을 터뜨렸고 2009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천금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6월함부르크 SVFC 포르투로 부터, 7월PSV 아인트호벤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으나 기성용 측에서 이적설을 일축하며 일단락되었다.[4] 8월일본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호치J리그요코하마 F. 마리노스가 이적료 43억원에 영입을 추진 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5]

국가대표 경력 [편집]

U-20 대표팀에 선발되어,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2007년 9월 8일 바레인과의 경기로 첫 U-23 대표팀 경기를 치뤘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2008년 9월 5일 요르단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 두 경기만에 첫 A매치 득점을 올렸고,[6] 바로 다음 경기인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두번째 A매치 득점을 기록하였으며, 2009년 6월 6일 아랍에미리트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세번째 A매치 득점을 성공시켰다.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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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cm의 탁월한 신체조건과 스피드, 기술, 시야 그리고 공격력을 갖추었다.

호리호리한 체구로 상대와의 힘싸움에서 고전하여 파워에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평을 받지만, 뛰어난 창의성으로 보완하였다.

미사일 같이 낮고 매우 빠르며 날카로운 킥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의 전담 프리키커를 맡고 있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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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아버지는 기영옥으로, 과거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은퇴 이후에 대한축구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금호고등학교 감독을 거쳐 현재는 광양제철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7년 11월 17일 우즈베키스탄과의 2008년 하계 올림픽 예선에서 U-23 대표팀이 졸전을 거두자, 자신에게 폭언을 퍼붓던 악플러들에게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하여 독설을 내뱉어 축구팬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켰고,[7] 결국 축구팬들에게 사과하였다.[8]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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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편집]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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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편집]

클럽 [편집]

FC 서울 [편집]

주석 [편집]

  1. FC서울의‘용라인’은 7번으로 통한다
  2. 이석무. “"맨유, 기성용에 러브콜" KBS 보도…서울은 공식 부인”, 《마이데일리》, 2007년 9월 15일 작성. [ ]
  3. 손춘근. “'기성용 맨유 이적설', 맨유도 주목”, 《스포탈코리아》, 2007년 9월 17일 작성.
  4. 김동욱. “기성용 "유럽진출요? 저도 모르는 사실이예요"”, 《노컷뉴스》, 2009년 7월 8일 작성.
  5. 김종국. “日 언론 "요코하마, 기성용 영입에 43억원 책정"”, 《마이데일리》, 2009년 8월 3일 작성.
  6. 김종국. “'19살 막내' 기성용, A매치 두 경기 만에 데뷔골”, 《마이데일리》, 2008년 9월 10일 작성.
  7. 축구대표팀 기성용 '거침없는 독설' 물의
  8. 기성용 "미니홈피 발언 경솔, 팬들에게 죄송하다"





 


위키백과에서 이청용

이청용(李菁龍[1], 1988년 7월 2일 ~ )은 대한민국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볼턴 원더러스 FC 소속으로 뛰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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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출생으로 창동초등학교를 거쳐 도봉중학교를 중퇴하였다. 이름이 '청용(菁龍)'인 것에 착안하여 '블루 드래곤(Blue Drago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축구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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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생활 [편집]

중학교 중퇴 후 2004년 FC 서울에 입단하여 K-리그에 데뷔했으나, 2년 동안 단 한차례의 리그 경기에도 뛰지 못했고, 2006년에서야 하우젠 컵을 포함하여 4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2007년부터 FC 서울에 새로 부임한 세뇰 귀네슈 감독에게 팀의 주전으로 중용받으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2007년 K-리그 컵 도움왕에 올랐으며 2008년 FC 서울K-리그 준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9년 1월엔 현지 ESPN 선정 '2009년 주목할 만한 유망주'와 더 타임즈 선정 '떠오르는 50인의 스타들'에 뽑히기도 하였다.[2][3]

2009년 7월 19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볼턴 원더러스 FC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고,[4] 8월 14일 워크퍼밋을 발급받은 뒤 이적이 확정되어, 대한민국 7번째 프리미어리거 되었다.[5]



국가 대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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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5 대표팀, U-17 대표팀, U-20 대표팀 등 각급 청소년 대표팀을 경험하며,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2007년 10월 17일 시리아와의 경기로 첫 U-23 대표팀 경기를 치뤘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2008년 5월 31일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요르단과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고, 2008년 9월 5일 요르단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A매치 득점을 올렸다.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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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와 상황 인식이 좋고, 첫 번째 볼터치와 민첩성, 스피드, 골대 앞에서의 침착성, 지구력 등을 모두 갖추었다. 피지컬적인 면에서 다소 약점이 노출되기는 하지만, 경기흐름을 읽어 플레이에 반영하는 센스는 단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드필드에서의 움직임이나 정확한 침투능력, 날카로운 패스 또한 이청용의 강점 중 하나이다.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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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편집]

수상 [편집]

개인 [편집]

클럽 [편집]

FC 서울 [편집]

주석 [편집]

  1. FC서울의‘용라인’은 7번으로 통한다
  2. John Carter. “Youngsters out to impress in 2009”, 《ESPN》, 2009년 1월 17일 작성.
  3. Football's top 50 rising stars”, 《더 타임즈》, 2009년 1월 12일 작성.
  4. 김성진. “이청용, 볼턴 입단 유력… 20일 英 출국”, 《스포탈코리아》, 2009년 7월 19일 작성.
  5. 김종국. “볼턴 원더러스, 이청용 영입 공식 발표”, 《마이데일리》, 2009년 8월 14일 작성.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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