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그 집안과 친척인데 형제가 다 수재랩니다. 물론 타고난 머리도 좋겠지만 집안 분위기가
공부 잘 할
분위기였다고...
그건 부럽더라 하더군요.
하늘은...... 다~안 주신다....고들하죠 ㅎㅎ
머리가 좋으면 돈복이 적다던가 결혼복이
위태롭다던가~~
어째됐든....코메리칸 딸이 저렇게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디스하는 거 보니깐...세상말세군요
고승덕씨가
재혼한 아내가 열 살 어리고....전처의 대학 후배에 나름 커리어우먼으로 잘 나가는 기자고..
게다가 방송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깨볶았으니...처가쪽이 속이 뒤집어졌겠네요
그나저나 박태준 딸들도 파란만장 하네요
전두환 아들도 사위였었다니....
아버지 종로 고피부과 원장이었어요...서울대의대출신에
아무튼 사랑없이 출세욕에 조건보고 한 결혼같네요
박태준씨가 딸들 혼사에 신경을 안쓴건 아닌데 다 별로안좋은 패를 고르셨네요. 그 당시에는 제일 반짝거렸겠지만.
고승덕이 본인
입으로도 직접 말했어요. 유학생활하는데 따까리 필요해서 결혼했다구요. 딱 저렇게 말했어요.따까리가 필요해서 결혼은 해야할것같으니 들어온 조건중에
제일 좋은걸로 골라잡았나보죠. 그리고 자서전에도 애 울음소리때문에 집에 거의 안들어가고 도서관에서 살았다는 둥 가족에 거의 신경쓰지않은 티가
났었죠. 왜 이혼당했는지 대충 알겠다능...
그리고 코메리칸이든 뭐든 똑부러지게 잘 자란 딸이 지금 바른소리 해줘서 고승덕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바로보게해줘 참 고맙네요. 세상말세는 자기 유전자만 뿌린채 제대로 신경쓰지않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불리는게 세상말세죠. 저 정도면
그냥 정자제공자라고 해야할 판.
저도 가난한집 아들이 곱게 자란 부잣집 포스코 사장 딸과 결혼해서 집안차이 문화차이 극복하기 힘들었다라고 알았는데.
방송에서 고승덕이
그렇게 떠들었음.
아버지 의사, 외조부 대법원장 이정도면 재벌가에서 사위로 들일만하죠.
진짜 시골 촌닭인줄 알았음. 외모가 딱 그
이미지임
광주에서 출생한 고승덕은 광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경기고 2학년 1학기에는 반에서 57등을 기록하는 등 성적이 하위권이었으나 꾸준한 노력으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자서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2003년 초판)에서 영어와 수학은 혼자서도 자신 있었으나, 과학은 혼자공부하기 어려워 과외를 받았다고 가감없이 서술하였다. 사실을 중시하는 법조인 답게 진솔한 글이라는 독자의 호평이 많았다.
단과대를 수석입학 했지만, 전체수석이 목표였던 터라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서도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1학년 때 부터 사법고시에 올인했다고 한다. 고시준비 6개월만에 1차 합격, 2차는 2번 응시 후 최종 합격하였고 당시 역대 사법시험 최연소 타이틀을 얻었다. 이 후 재학기간동안 외무고등고시차석, 행정고등고시 수석 합격한 '원조공신'으로 유명하다.[1]컬럼비아 로스쿨에서 정규 Juris Doctor (Doctor of Jurisprudence, 법무박사) 과정을 졸업했고 하버드 로스쿨과 예일 로스쿨에서도 각각 LLM(법학석사)를 받았다. 하버드, 컬럼비아, 예일 로스쿨 모두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고승덕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미국 4개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 세계 최대의 로펌인 베이커 & 맥켄지의 뉴욕 사무소에서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귀국 후 수원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이후 변호사로 재직했고, 2003년에는 펀드매니저 자격증을 취득해 증권업계에까지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SBS의 법률 교양 프로그램인 《솔로몬의 선택》에 변호사로 출연하는 등 방송 연예 프로에 최초로 출연하고 당시 최고의 인지도를 얻은 변호사였고, 증권 투자 관련 베스트셀러와 에세이집을 쓰고 증권전문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2007년 한나라당의 클린정치위원회에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되어 2008년 5월 정치에 입문했고, 제18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서초구 을에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2012년까지 활동했다.
2000년경부터 초중고생, 학부모, 대학생, 시민 등을 대상으로 꿈과 노력을 주제로 한 특강을 활발하게 해오고 있으며, 2011년 특강 500회 돌파 기념으로 '고승덕의 ABCD성공법 -꿈을 꾸며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를 출간했고, 2013년에는 청소년판으로 '꿈으로 돌파하라'를 펴내서 여성가족부 선정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청소년나비운동본부를 설립하여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을 지원하여 오다가 이를 모태로 2010년에는 여성가족부 산하 사단법인 꿈을 키우는 사람들 드림파머스를 설립하고 대표가 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드림멘토링아카데미를 매학기 운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로 상담과 멘토링을 하는 등 청소년의 꿈과 진로를 계발하는 공익사업을 해오고 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자원봉사센터중앙회가 주관한 청소년행복나눔자원봉사대상 심사위원장을 세 차례 역임하였고, 2010년에는 중앙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국가자격인 청소년지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한국청소년발전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3년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을 맡아 가출청소년의 보호와 자립지원도 돕고 있다. 2014년부터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청소년복지 전공)을 맡고 있다.
제주 출신인 아버지 고익태(서울대 의대 졸업, 전 피부과 전문의, 조선대의대 교수로 정년퇴임)와 윤선도 후손인 어머니 윤순엽의 슬하에서 2녀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숙은 대법관을 역임한 윤일영 변호사이다. 고교 시절 진로를 법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당시 판사였던 외숙의 영향을 받았다고 자서전에서 그는 언급하였다. 현재 부인은 신문기자출신 이무경이며, 이혼 전 부인은 화가로 활동 중인 박유아이다. 박유아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동양화전공)을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미술사와 드로잉 석사과정을 마쳤다. 당시 유학생 신분이었던 고승덕과 박유아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였으며, 처음 만남이 있던 날 같은 레스토랑에서 다른 층에 앉아 상대를 기다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들 사이에는 1남1녀 자녀가 있다. (1987년 딸 출생, 1991년 아들 출생)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 떨어져 지냈다. 전 부인은 1998년 아이들과 미국뉴욕으로 건너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20] 고승덕은 2002년 박유아와 합의 이혼하였지만, 평소 고승덕의 정치입문문제로 서로 이견이 있었다. 이혼 이후 고승덕은 2004년에 KBS의 전 아나운서 왕종근의 소개[21]로 10살 연하의 이무경(李戊瓊)을 만나 비밀리에 재혼하였다.[22] 이무경은 당시 경향신문 기자로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경향신문에 입사해 편집부와 문화부, 《매거진X》부 등을 거쳤으며, 고승덕은 자신의 자서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집필에 많은 도움을 주어 호감을 받았다고 고백하였으며, 저서 말미에 감사의 글을 남겼다.[23] 이씨는 지난 2005년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24]
평범하다 아니다는 상대적인거겠죠. 일반가정에서 아버지가 서울대 의대 나온 의사에, 아들은 판사면 평범한건 아니였겠지만, 상대사돈이
포철회장에 정계 유명정치인에 해외에서도 평가나오는 정치인겸 경영자였잖아요. 그런집안에 사위로 들어갔으니 엄청 평범하다고 본인은 느꼈을 수도
있죠. 그리고 그 집안 사위중에서 고승덕이 그렇게 튀는것도 아니예요. 다른 사위들은 더 엄청납니다.